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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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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40110. 시설장칼럼.
작성자 서울정신요양원 작성일 2024-01-10  (조회 : 1185)
첨부파일 202411012304687186.jpg


 

[ 아름답게 물들어야 할 2024 ]

                                                        -백윤미 원장- 



 

 

기쁘게만 시작하고픈 1월이건만

서정원의 1월은 벌써부터 크고작은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급성기 정신질환자에 비하면 그 빈도나 강도가 큰 편은 아닐지라도

항상 정신과증상을 끌어안고 계시는 이곳 생활인들은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서 한번씩 호되게 ‘마음의 감기’를 앓으시곤 합니다.

 

 

며칠전에는 이곳에서 생활하시던 ***가족분께서

흡연을 하신 후에 말없이 요양원을 나가셨습니다.

 

퇴근을 준비해야 하는 6시 즈음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덕분에 서정원의 남자직원들이 퇴근도 못하고 전부 요양원 밖으로 뛰어나가서

큰 길로 나가시려던 ***님을 찾아 커피도 한잔 사드리며 설득하여 모시고 들어왔지요.

봄날이었으면 별것 아닌 작은 일이었겠지만,

너무나 추운 겨울이라, 몸이 상하실까봐 걱정이 많이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해당 상황에 대한 보고서에는

그분에 대한 간단한 인적사항이 적혀 있었습니다.

‘***님은 커피와 담배를 무척 좋아하시며,

용돈이 떨어지면 노모에게 부탁하여 용돈을 받아 커피와 담배값으로 사용하심.’

 

그때 상황보고서를 결재하던 제 눈에 들어온 단어가 있었습니다.

 

“老母”

 

***님도 60을 넘기신 분이시니 노모의 연세는 어느정도일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그 “노모”라는 단어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본인의 걸음조차 성치 않으심에도

항상 택시를 타고 먼 요양원까지 오셔서 아들을 보고, 직원들에게 당부하며 가시던 분.

 

 

 

제게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자녀가 있습니다.

그 어린 자녀들이 마음을 앓고 힘든 일을 겪을 때도 매번 가슴이 시리고 아프더군요.

하물며 자녀가 성인이 되어 노인이 될 때까지,

자녀의 온전한 회복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노모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싶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울었다가, 

기대했다가, 

다시 또 실망했다가, 

안될 줄 알면서도 여기저기 자녀를 의탁하며 실오라기같은 기대를 걸어오셨을까.. 

얼마나 하늘을 보며 많이 우셨을까..

그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메여왔습니다.

 

 

수년 전에 보호자협의회를 진행하는데,

보호자님들께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 바다만큼 울었을거야..” 라는 한 보호자님의 말씀에

“... 나는 이제 눈물도 안나와.. 흘릴 눈물이 없어..”라는 다른 보호자님의 대답을 말입니다.

얼마나 울어야 흘릴 눈물이 더 이상 없는 것일까요.

이러한 소소한 일상의 흔적 가운데서 보호자님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서정원에는 그런 수많은 인생스토리를 가지신 분들이 모여사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이 분들을 모시는 저희들의 마음이 단순히 “잘 모시자!”로만 끝날 수는 없게 됩니다.

입소자와 보호자의 인생길에서 누구도 함께 나누어지지 않았던 짐들을

저희가 나누어서 짊어진다고 생각하면,

저희가 하는 모든 일들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한사람과 한 가정의 인생을 같이 짊어지는 일이니까요...

 

늘 이런 이벤트를 대할 때마다,

정신요양시설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항상 고민하게 됩니다.

정신재활시설이나 정신의료기관은 “회복”에 초점을 두는 곳이지만,

안타깝게도 정신요양원에 계시는 분들은 온전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분들이시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이분들의 “회복”보다는

“여생의 질”에 집중해야 하는 곳입니다.

 

하루하루를 질높게 잘 살아내는 것.

무언가를 해내는 능력있는 인간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무엇을 해내지 않더라도 인간으로서 고귀한 존중을 받으며 살수 있게 해드리는 것..

인생에서의 최고 휴식시간을 갖게 해드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적은 지원인력에 비해 정책적으로 요구되어지는 것들은 터무니 없이 많은 시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2024년에 최선을 다해 주력해야 할 것은

입소해계신 가족들이 “최상의 대접을 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

우리가 과연 무엇을 목표로 하여 정진해야 하느냐가 될 것 같습니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기도해야할 것 같은 2024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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